신기하게도 계절의 변화를 쉬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뜻은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봄이 오는 것을 마치 시샘이라도 하듯, 하얀 눈이 펑펑 쏟아졌다. 폭설과 함께 다시 추워져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머지않은 곳을 있을 봄을 기다리는 맘이 설렌다.
‘모래놀이가족치료소’ 생소한 이름이다. ‘모래’라는 포근함 때문인지 기자의 가슴은 호기심을 가득 찼다. 근원적인 묘한 끌림이 일렁였다. 모래놀이라니. 모래는 우리가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아니 우리들의 근원이며 세상이었고 천혜의 자연 놀이터가 아니었던가. 자연이 준 선물인 흙과 돌에서 뒹굴며 살았던 세대다.
서원대학교에서 충북대병원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을 넘자마자 우회전, 개신 삼익 1차아파트에 위치한 ‘충북모래놀이가족치료소’는 전망 좋은 7층 아파트였다. 문을 열자 잔잔한 클래식과 함께 짙은 녹차향이 반겼다.
“모래놀이치료는 자연으로의 회귀입니다. 우리가 온 몸을 벗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봐요. 어쩐지 자연과 완전히 동화된 느낌을 받잖아요. 모래는 태초의 감정과 만나는 가장 편안한 장소입니다. 그 모래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감정들을 내어 놓는 것이죠.”라며 밝게 웃는 사람은 ‘충북모래놀이가족치료소’ 문채련 소장이다.

모래놀이치료의 역사
모래놀이치료는 모래상자를 이용한 기법으로 1929년 영국의 소아과 의사인 로웬펠드 박사에 의해 고안된 아동심리치료기법. 그 당시 심리치료 추세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에 기초를 둔‘아동분석’이 성행하고 있었는데, 로웬펠트는 이를 비판하고 해석이나 전이 없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래놀이치료를 생각해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스위스의 칼프 여사와 심리학자 융의 만남을 통해 모래놀이치료는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칼프 여사는 융으로부터 분석심리를 공부를 하고 로웬펠트로부터 ‘세계 기법’ 배우게 된다. 칼프 여사가 로웬펠트의 방법을 발전시킨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에 주목했다는 점 즉, ‘모자일체성’이다. 모래상자에서는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의 안정된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야만 내담자는 내면의 표현을 치료자 앞에서 할 수 있고 치료의 과정이 진전된다. 융의 심리학을 이용하여 모래상자의 표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융이 말한‘자기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치료자와 내담자의 사이가‘모자일체성’과 같은 관계로 성립되면 클라이언트의 자기실현 과정이 촉진되어 자신의 힘에 의해 치유되어 감을 분명하게 말한 것이다.
동양은 1965년 일본의 카와이 교수가 융 연구소로부터 일본에 들여와 발전시켰다. 일본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은‘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잘 하는 것 때문이고, 또 하나는 칼프 여사와는 달리 카와이 교수는‘해석보다는 감상을 한다.’는 마음으로 모래놀이치료를 발전시켜 나갔기 때문이었다. 칼프 여사가 상징에 비중을 두고 모래상자의 해석에 초점을 맞춘 반면 카와이 교수는 모래상자의 전체성과 밸런스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나라는 동부아동상담소 소장이신 김보애 수녀와 대구대학의 송영혜 교수가 일본에 직접 가서 모래상자 시연을 해보고 도입해 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충북에 유일의‘모래놀이가족치료소’는 김보애 수녀에게 7년 동안 사사받은 문채련 박사가 2006년부터 청주에 문을 열었던 것이다.
문채련 소장은 “모래놀이치료는 모래상자 안에 다양한 형태의 작은 소품들을 사용하여 심리적,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분들의 내면세계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내면을 담아내는 또 하나의 세계이며 모래상자 안에서 치유와 성장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치료적 행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문 소장은 20여 년간 유치원 원장을 역임한 까닭에 아이들의 정서, 심리문제를 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다양한 성격을 만나게 됩니다. 20년 동안 정서불안, 자폐아, 정신분열을 겪는 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상담을 해본 결과 상담은 상담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라며 “풍부한 저의 현장경험을 살려 아이들의 심리를 상담이 아닌 치료를 하고 싶었지요. 그런 참에 ‘모래치료놀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문 소장은 그동안 치료해온 7가지 대표 사례를 모아 ‘모래상자 이야기’란 제목으로 이담출판사에서 책을 펴내기도 했다. 문 소장은 “제가 처음 모래놀이치료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심리를 모래에 풀어놓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전 초등학교 때 몸이 약해서 그네에 대한 공포가 있었죠. 친구들이 재미있게 타는 그네를 전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모래위에 그네를 갖다 놓는 겁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네라는 잠재적 심리가 나온 것이죠. 타고 싶은 열망이 아직까지 내면에 있었던 거죠.”라며 “저 자신도 몰랐던 과거의 일이 모래라는 작은 공간에 내가 인연이 있던 작은 소품들을 모래위에 표현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라며 “내가 평생 해야 할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현재 모래놀이치료를 이용하는 주 고객은 ‘여성의 전화’를 통해 성폭력, 가정폭력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법원에서 ‘이혼신청중재기간’에 모래놀이치료를 통해 상담을 받기도 한다. 특히, 이곳 모래놀이치료소에서는 아동심리치료를 전담으로 하고 있으며 ‘미술심리치료’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